같은 날, 두 가지 뉴스가 떴다. 하나는 핀테크 기업 토스가 오픈AI와 직접 손잡고 사내 AI 협업 세션을 열었다는 소식. 다른 하나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MIT, 예일, 프라운호퍼 같은 글로벌 명문 연구기관 8곳과 제조AI 국제공동연구에 나선다는 발표.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기사를 나란히 놓고 보니, 한국 기업과 정부가 AI 전환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사내에서, 누구는 국가 단위로. 누구는 미국 빅테크와, 누구는 세계 최고 연구기관과. 같은 시점에 다른 결의 움직임이 동시에 터졌다.
이 변화의 속도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패턴이 숨어 있다.
토스가 오픈AI를 사내로 끌어들인 이유
토스(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5월 15일 서울 신논현 오피스에서 오픈AI 전문가를 초청해 ‘AI 협업 세션’을 진행했다. 매주 운영하는 사내 AI 학습 프로그램인 ‘AI 서프 데이(Surf Day)’의 특별 회차로 마련된 자리였다.
규모가 작지 않다. 온·오프라인으로 40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고,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7점. 단순한 강의 행사가 아니었다는 게 흥미롭다. 오전에는 개발자와 비개발자를 나눠 별도 세션을 운영했다. 개발자 세션은 코덱스(Codex)를 활용한 팀 개발 업무 자동화. 비개발자 세션은 챗GPT 워크스페이스 에이전트로 반복 업무를 워크플로우로 전환하는 방법.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후엔 미니 해커톤이 이어졌다. ‘AI 도구 설계’와 ‘업무 흐름에 AI 적용’이라는 두 트랙으로 운영됐고, 개발과 비개발 직군이 함께 2시간 30분 동안 실제 업무에 바로 적용할 AI 사례를 구현했다.
수상작도 구체적이었다. 수천 건의 가맹점 상품 데이터를 AI 에이전트가 자동 분류하는 ‘토스플레이스 메뉴 분류 도구’, 그리고 코드 작성부터 동작 검증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는 개발용 도구가 뽑혔다. 단발성 워크숍이 아니라 실제 운영 중인 서비스 개선에 직접 꽂힐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오픈AI 측도 “짧은 시간 안에 나온 결과물의 완성도가 인상적”이라고 평가했고, 참가자 전원에게 챗GPT 프로 이용권을 제공했다.
핀테크가 AI를 ‘교육’이 아니라 ‘실험실’로 다루기 시작했다
내가 이 뉴스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실습형’ 구조다. 한국 기업들의 사내 AI 교육은 그동안 대부분 강의 위주였다. 외부 강사가 와서 ChatGPT 사용법을 두 시간 알려주고 끝나는 식. 그런데 토스가 한 건 정반대다.
이미 사내에서 매주 ‘AI 서프 데이’를 굴리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본 인프라로 깔려 있다는 뜻이다. 그 위에 오픈AI 전문가가 와서 미니 해커톤까지 돌렸다. 토스는 이미 토스플레이스 메뉴 등록 기능에 챗GPT-5.0 수준의 LLM을 적용해 메뉴판 사진만 찍으면 AI가 상품명, 가격, 카테고리, 옵션까지 인식해 자동 등록하는 기능을 출시한 바 있다. 이런 사내 문화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 흐름은 AI 에이전트가 기업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사스포칼립스 이슈와 정확히 같은 맥락에 있다. 비싼 SaaS를 사 쓰는 대신, 사내 인력이 직접 챗GPT 워크스페이스 에이전트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한다. 코덱스로 팀 개발 업무를 돌린다. 사용자 1인당 월 수백 달러짜리 솔루션 대신, 사내 AI 리터러시를 끌어올려서 직접 만드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토스 관계자가 한 말이 이를 요약한다. “임직원들이 AI를 가장 빠르고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회사의 AI 도입 전략이 ‘도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실험 문화를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신호다.
KIAT의 베팅 – 9개 과제, 8개 글로벌 기관
같은 날, 결이 다른 발표가 또 하나 나왔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5월 26일 ‘2026년 글로벌산업기술협력센터 사업(M.AX 공동연구)’을 공고했다고 밝혔다. 국내 제조업의 AI 전환을 목표로, 해외 최우수 연구기관과 국제공동연구를 추진하는 사업이다.
협력 대상 기관 명단이 무게감 있다. 미국 예일대, 존스홉킨스대, 조지아텍, 퍼듀대, MIT, 독일 프라운호퍼, 캐나다 토론토대, 영국 UCL. 모두 글로벌산업기술협력센터로 선정된 8곳이다. 신규 과제도 9개로 잡혔다. AI팩토리, 휴머노이드, 제조서비스, 바이오 분야에 걸쳐 분포돼 있다.
내가 가장 주목한 건 휴머노이드 분야 과제다. 제조 현장에 투입된 다양한 로봇들이 공동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장적응형 멀티 AI 에이전트 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가 명시돼 있다. 여러 종류의 로봇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글로벌 연구기관이 보유한 멀티 AI 에이전트 기반 통합 제어 기술을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이건 단순 자동화가 아니다. 멀티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은 LangGraph 같은 프레임워크에서 이미 검증된 패러다임이지만, 그걸 디지털 환경이 아니라 실제 공장 바닥에 적용하겠다는 시도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협업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단순히 한 대를 잘 움직이는 기술로는 부족하다. 여러 종류의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충돌 없이 작업을 분담하고 의사결정을 공유해야 한다. 그 핵심이 바로 멀티 에이전트 제어다.
AI팩토리 과제도 비슷한 방향이다. 제조공정과 설비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자율 의사결정 AI를 적용해 품질과 에너지 운영을 최적화한다. AI 제조서비스 분야에서는 석유화학 신소재 개발 전 과정을 자율실험실과 AI팩토리로 연계해 자동화하는 제조서비스 플랫폼 개발이 추진된다.
KIAT가 제시한 핵심 연구목표 중 하나가 ‘AI 자율제조 의사결정 수준과 에너지 절감률에서 세계 최고 또는 최초 수준’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비교 기준 자체를 글로벌로 잡았다는 뜻이다.
왜 지금, 왜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지나
두 사건이 같은 날 떴다는 건 우연이지만, 같은 시기에 벌어지고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배경에는 비슷한 압력이 깔려 있다.
첫째, 글로벌 AI 전환 속도가 기업과 정부 모두를 압박하고 있다. Gartner는 2026년까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의 40%가 에이전트형 AI를 포함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해 만에 5%에서 40%로 뛰는 수치다.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한국 제조업도, 한국 핀테크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둘째, 단순히 ‘도구를 산다’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안 되는 시대가 왔다. 누구나 챗GPT를 쓸 수 있다. 누구나 GPT API를 호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별화는 어디서 나오나. 토스의 답은 ‘사내 AI 리터러시’다. 모든 직원이 챗GPT 워크스페이스 에이전트와 코덱스를 자유롭게 다루는 조직 문화. KIAT의 답은 ‘글로벌 최고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다. 멀티 에이전트, 자율제조, 자율실험실 같은 영역에서 세계 최초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전략.
셋째, AI 전환이 이제 ‘시범사업’ 단계를 지났다. 토스는 이미 토스플레이스에서 LLM 기반 메뉴 등록 자동화를 실제 서비스에 적용했다. KIAT 과제도 글로벌 현장과 테스트베드 실증을 포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명시했다. 둘 다 PoC가 아니라 실제 운영 단계의 결과물을 요구한다.
한국 기업이 마주한 두 갈래 길
여기서 흥미로운 게 갈라진다. 두 사례는 결국 한국 기업이 마주한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토스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은 글로벌 AI 빅테크와 직접 협력한다. 오픈AI가 직접 사내에 와서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협업이 가능한 이유는 토스가 이미 오픈AI의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는 ‘큰 고객’이기 때문이다. 즉 AI 활용 자체가 이미 비즈니스 핵심에 가까이 가 있는 기업들은, 글로벌 AI 모델 회사와 직접 손잡고 사내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간다.
반면 전통 제조업은 다르다. 한국 제조업이 단독으로 글로벌 최고 수준의 AI 자율제조 기술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KIAT는 MIT, 예일, 프라운호퍼 같은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로 가는 길을 택했다. 글로벌 연구기관의 멀티 AI 에이전트 기술을 들여와 국내 제조 현장에 접목시키는 방식이다.
전윤종 KIAT 원장은 “국제기술협력으로 제조 현장의 데이터, 공정, 설비를 인공지능으로 연결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을 촉진하고 성공적인 제조 인공지능전환(M.AX)의 사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핀테크는 ‘빠른 실험’으로, 제조업은 ‘깊은 협력’으로. 같은 AI 전환이지만 산업 특성에 따라 접근법이 갈리고 있다.
이 두 뉴스가 던지는 진짜 메시지
정리해보자.
토스가 오픈AI와 사내 협업 세션을 열어 직원 400명에게 챗GPT 워크스페이스 에이전트와 코덱스 활용법을 실전 워크숍으로 풀어낸 사건은, 핀테크가 AI를 ‘교육 콘텐츠’가 아니라 ‘실험 문화’로 다루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만족도 4.7점과 즉시 적용 가능한 결과물은 이 방향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운영 체계로 자리 잡았다는 신호다.
KIAT이 MIT, 예일, 프라운호퍼 등 8개 해외 명문 기관과 9개 과제로 제조AI 국제공동연구에 나선 것은, 한국 제조업이 AI 전환을 글로벌 최고 수준에서 추격하기 위해 ‘국가 단위 공동연구’라는 카드를 꺼냈음을 의미한다. 휴머노이드 멀티 AI 에이전트, AI팩토리, 자율실험실 같은 영역에서 세계 최초 수준의 결과물을 목표로 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한국에서 AI 전환은 더 이상 ‘도입 여부’를 따지는 단계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깊게 운영체계에 녹여내느냐’를 다투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은 빅테크와 직접 손을 잡고, 제조업은 국제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로 깊이를 더한다.
여기서 누가 어떤 자리에서 일하든 한 가지 질문은 같다. 우리 조직은 지금 AI를 ‘구매’하고 있는가, 아니면 ‘운영’하고 있는가. 토스와 KIAT의 답은 둘 다 ‘운영’ 쪽에 가깝다. 이 차이가 앞으로 1~2년 사이 한국 기업들의 격차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