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3일 화요일 새벽, 나스닥 화면이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 Salesforce, ServiceNow, SAP, Workday.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의 터줏대감들이 단 하루 만에 약 3,000억 달러의 시장가치를 날려버렸다. 실적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직전 분기 Microsoft와 SAP의 수치는 오히려 견고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방아쇠는 의외로 작은 발표 하나였다. Anthropic이 Claude에 법률 특화 플러그인을 공개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AI 에이전트가 SaaS를 대체한다.” 투자자들이 패닉 셀에 나섰고, ‘SaaSpocalypse(사스포칼립스)’라는 신조어가 실리콘밸리 전역을 뒤덮었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면서 처음에는 과잉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료를 파고들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단순한 주가 변동이 아니었다. 지난 50년간 기업 소프트웨어가 작동해 온 방식 자체가 흔들리는 신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야기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부터 보는 게 빠르다.
연간 매출 20억 달러 이상의 데이터 보안 기업 Cohesity는 최근 Claude Code 에이전트를 활용해 단 이틀 만에 직원 퇴사 시 기기와 계정을 자동 비활성화하는 기능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사용자 1인당 월 수백 달러짜리 ServiceNow 솔루션 도입 검토가 즉시 중단됐다.
ServiceNow 측은 “AI로 대체된 바이브코딩 툴이 컴플라이언스와 감사 가능성 측면에서 제대로 동작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반박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일단 만들어보자, 그게 더 빠르니까.”
바이브코딩의 등장이 이 흐름을 가속시켰다. 2025년 초 Andrej Karpathy가 처음 쓴 이 용어는 같은 해 콜린스 영어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만큼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생성되는 코드의 41%가 AI를 거치고, Y Combinator 2025년 겨울 배치 스타트업 중 25%는 코드베이스의 95% 이상을 AI가 작성한다고 밝혔다. 코드 생산의 비용이 사실상 0에 가까워지면,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사 쓰는’ 이유의 절반이 사라진다.
SaaS가 위협받는 진짜 이유
SaaS 모델의 기반은 단순하다. “우리가 만들기 어려우니 너희가 만든 걸 구독하겠다.” 사용자 수에 비례해 과금하고, 기능을 쓰는 만큼 돈을 낸다. 이 구조가 30년 가까이 작동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는 이 방정식의 전제를 흔든다. “우리가 이제 직접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며칠 안에, 그것도 정확히 우리 업무 흐름에 맞게.
Gartner는 2026년까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의 40%가 에이전트형 AI를 포함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 현재 5% 미만인 수치가 1년 만에 8배로 뛰는 예측이다. 나아가 2035년에는 에이전틱 AI가 전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며, 규모로는 4,5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더 결정적인 변화는 과금 구조다. 기존 SaaS는 사람 머릿수를 기준으로 돈을 받았다. 직원 1,000명이 있으면 1,000 시트. 이게 곧 매출이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그 1,000명의 일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 시트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Salesforce는 이 현실을 직시하고 Agentforce를 통해 ‘성과 기반 과금’을 선언했다. 대화당 2달러로 시작해 이후 Action 단위의 Flex Credits 체계로 전환하며 건당 약 0.1달러 수준으로 재편했다. 사용자 수가 아니라 AI가 처리한 업무 건수가 과금 기준이 된 것이다.
공포와 현실 사이의 거리
그렇다면 SaaS는 정말 끝나는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단,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딜로이트는 ‘SaaS 종말론’이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핵심 ‘시스템 오브 레코드’를 단기간에 교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 연방항공청이 플로피 디스크와 Windows 95 기반 시스템을 교체하는 데 4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 현실을 잘 보여준다. Cohesity 사례에서도 Salesforce나 ServiceNow 같은 핵심 플랫폼은 최소 1~2년은 유지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실제로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로 대체하는 건 핵심 ERP나 CRM이 아니다. 그 주변에 붙어 있던 고비용 인간 워크플로우와 자동화 애드온들이다. 수백만 원짜리 구독료를 내며 쓰던 보조 툴들이 먼저 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주변부’의 규모가 작지 않다. 딜로이트 소프트웨어 부문 리더 아요 오두소테는 “가장 큰 기회는 핵심 시스템을 단기간에 교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그 주변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경계 애플리케이션과 수작업 프로세스를 에이전트 모델을 통해 소프트웨어화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 수천 개의 틈새 SaaS들이 가장 먼저 위협에 놓인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들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 흐름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국내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미 비슷한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NHN두레이는 2024년 출시 이후 이미 20개 이상의 공공기관에 공급해 업무 효율을 높였으며, 올해 하반기 중 공공 시장에 ‘두레이 AI 에이전트’를 본격 출시할 계획이다. 오랫동안 공공 SaaS 시장에서 조용히 자리를 넓혀온 플레이어가 에이전트로 전환 선언을 한 셈이다.
군(軍)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방부가 전 영역에 걸친 AI 에이전트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긴급표적 처리체계 구축을 명시 목표로 삼고 있다. 2023년 에이워즈 1.0 이후 RAG 기반 3.0 체계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은, 단순 챗봇을 넘어 실질적인 의사결정 자동화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공 AI 플랫폼 시장에서는 티맥스티베로가 주목받고 있다. SQL을 몰라도 자연어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공 AI 플랫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들이 DB에 AI 기능을 더해 ‘AI 기반 통합 데이터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전략은 SaaS의 진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에이전트가 소프트웨어를 ‘인간 직원처럼’ 다루는 세상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시각은 내셔널리서치그룹의 보고서에 담긴 이 관점이다. “AI 에이전트를 도입할 때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구매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인간 컨설턴트나 외부 계약자를 채용하는 관점에서 판단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LangGraph 기반 멀티에이전트 시스템을 구성하면서 처음에는 ‘어떤 도구를 쓸까’로 접근했다가, 결국 ‘이 에이전트가 우리 팀과 어떻게 협업할까’로 질문이 바뀌었다.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팀원을 뽑는 것처럼 검토하게 되더라는 거다.
실제로 AI 에이전트는 문제가 생겼을 때 특정 인원과만 상호작용하는 인간 직원과 달리, 수천 명의 직원과 동시에 접촉할 수 있다. 검증과 거버넌스의 기준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람을 채용하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SaaSpocalypse, 그 이후의 판도
공매도 세력들은 이미 포지션을 잡았다. 2026년에만 레거시 SaaS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수익이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다. Figma는 상장 첫날 142달러까지 치솟았다가 20달러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시장은 숫자보다 ‘구조’에 반응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SaaS가 몰락하는 건 아니다. Goldman Sachs는 AI 에이전트가 2030년까지 전체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 자체를 오히려 확장시키는 동시에, 이익이 특정 플레이어에게 불균형하게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 전체는 커지지만 누가 그 파이를 가져가느냐가 완전히 달라지는 구조다.
JP Morgan은 AI가 소프트웨어 자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경험’을 바꿀 것이라고 봤다. Fortune은 “AI 에이전트는 SaaS를 대체하지 않고 SaaS의 상위 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어도비가 AEP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터를 MCP와 A2A 계층으로 열어두며 “애플리케이션이 UI 레이어에 갇히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방향이다.
결국 살아남는 SaaS는 두 가지 중 하나다. AI 에이전트가 파고들 수 없는 깊은 컴플라이언스와 데이터 자산을 가진 플랫폼이거나, 스스로 에이전트 기반 풀스택 플랫폼으로 전환해 나가는 쪽이다.
이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AI 에이전트는 기업용 SaaS 시장 전체를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부 자동화 애드온부터 시작해 핵심 플랫폼을 에워싸는 방식으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판도를 바꾸고 있다. 바이브코딩이 코드 생산 비용을 낮추고,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이 업무 자동화의 범위를 넓히면서,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구독’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있다.
과금 구조도 바뀐다. 사람 머릿수 기반의 시트 라이선스는 AI가 처리한 업무 건수 기반의 성과형 모델로 전환 중이다. 이 전환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수록, 준비되지 않은 SaaS 기업의 타격도 커진다.
한국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 영역, 국방, 금융, 제조 전 분야에서 AI 에이전트 도입이 가속되고 있고, NHN두레이나 티맥스 같은 로컬 플레이어들이 이미 에이전트 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결국 이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당신이 지금 구독 중인 그 소프트웨어, AI 에이전트로 대체할 수 있는가. 아직 모르겠다면, 지금이 확인해볼 가장 좋은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