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라면 매일 한 번쯤은 열어보는 곳이 깃허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깃허브를 이끌었던 전직 CEO가 “이제 풀 리퀘스트는 한계에 왔다”며 새 플랫폼을 들고 나왔습니다. 토마스 돔케가 세운 엔타이어(Entire) 이야기입니다.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에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끝까지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최대한 쉽게 풀어 써보겠습니다.

엔타이어가 뭐길래 이렇게 화제일까
엔타이어는 깃허브 전 CEO 토마스 돔케가 설립한 회사입니다. 현지시간 26일, AI 에이전트와 사람이 함께 소프트웨어를 만들도록 설계한 독립형 ‘깃 포지(Git Forge)’를 출시했습니다.
깃 포지라는 말이 낯설 수 있는데, 쉽게 말해 깃허브나 깃랩처럼 소스코드를 보관하고, 서로 코드를 검토하고, 협업하는 공간입니다. 코드를 올려두는 창고이자 회의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이 플랫폼이 사람 중심이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쏟아내는 코드 변경을 빠르게 평가하고 병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기존 플랫폼은 사람이 코드를 쓰고 사람이 읽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AI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코드를 고쳐 올립니다. 사람이 그걸 한 줄씩 읽다가는 하루가 모자랍니다. 엔타이어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풀 리퀘스트가 사라지고 ‘트레일’이 온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변화는 풀 리퀘스트(Pull Request)를 ‘트레일(Trails)’이라는 새 방식으로 대체했다는 점입니다.
풀 리퀘스트는 개발자 사이에서는 거의 공기 같은 존재입니다. 내가 코드를 고치면 동료가 변경된 부분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합치는 방식이죠. 오픈소스 문화와 기업 개발을 혁명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돔케 CEO도 이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문제는 속도입니다. AI 에이전트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복잡하게 코드를 만들어냅니다. 변경 분량이 감당이 안 되니 검토가 병목이 됩니다. 트레일은 이 병목을 풀기 위해 나왔습니다.
작동 방식은 이렇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코드를 푸시할 때마다 여러 가지 평가가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그 결과가 개발자 화면에 한눈에 정리되어 나옵니다. 엔타이어는 이걸 항공기 조종사의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비유했습니다. 조종사가 계기판을 일일이 뒤지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가 눈앞에 떠 있는 것처럼, 개발자도 핵심 상태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코드만 보는 게 아니라 ‘왜 만들었는지’까지 본다
트레일이 흥미로운 이유는 보여주는 정보의 범위입니다. 풀 리퀘스트가 주로 코드의 차이점을 보여준다면, 트레일에서는 작업의 목적, 에이전트가 실행한 기록, 평가 결과까지 함께 확인합니다.
돔케 CEO는 트레일이 개발자의 아이디어와 에이전트 실행 기록, 작업 결과를 코드와 함께 검토해야 할 핵심 자료로 다룬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과물만 보던 시대에서 과정까지 보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흐름도 재미있습니다. 평가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반복해서 고칩니다. 개발자는 그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검증합니다. 그리고 모든 평가 기준이 충족되면, 코드의 모든 줄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도 병합할 수 있습니다. 여러 에이전트가 AI가 만든 코드의 품질을 평가해 주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합칠 수 있다는 것이 엔타이어의 설명입니다.
평가 데이터는 엔타이어 웹 화면과 오픈소스 명령줄 도구인 엔타이어 CLI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깃허브보다 최대 89배 빠르다는 푸시 속도
속도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엔타이어는 깃과 호환되는 새로운 소스코드 관리 서버를 바탕으로 분산형 깃 호스팅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코드 푸시 속도는 깃허브보다 최대 89배, 커서 오리진(Cursor Origin)보다 최대 6배 빠릅니다.
숫자가 꽤 강렬하죠.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회사가 내놓은 수치입니다. 어떤 조건에서 측정했는지에 따라 체감은 달라질 수 있으니, 실제 사용 후기가 쌓이기 전까지는 참고용으로 보시는 게 안전합니다. 그래도 AI 에이전트가 짧은 간격으로 계속 푸시한다는 환경을 생각하면, 속도가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방향 자체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장 위치도 고를 수 있습니다. 미국, EU, 인도, 호주 등 원하는 지역에서 비공개 저장소를 만들거나 기존 저장소를 옮겨 호스팅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가 중요한 기업이라면 반가운 부분입니다.
에이전트가 어제 한 일을 기억한다, 지속적 메모리
이번 발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기능은 ‘지속적 메모리(Continuous Memory)’입니다.
AI 코딩 에이전트를 써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새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에이전트가 이전 맥락을 잊어버려서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엔타이어는 에이전트의 작업 세션을 깃 저장소와 동기화해서, 과거 작업 기록과 프롬프트를 검색하고 다시 활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 구성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코드베이스의 관계를 파악하는 ‘코드베이스 그래프’입니다. 어떤 파일이 어떤 파일과 연결되어 있는지 지도를 그려두는 셈이어서, 에이전트가 필요한 정보를 더 빨리 찾습니다. 엔타이어는 이 덕분에 토큰 사용량을 최대 71%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토큰이 곧 비용이니, AI 에이전트를 많이 돌리는 팀에게는 꽤 매력적인 숫자입니다.
다른 하나는 ‘에이전트 두뇌’입니다. 이전 에이전트 세션을 장기 기억으로 바꿔서, 과거에 겪은 오류와 해결 과정을 재활용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신입이 선배의 업무 노트를 받아서 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존 깃허브 액션스에서 갈아타기 쉬울까
새 플랫폼이 아무리 좋아도 기존 작업 흐름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면 아무도 안 옮깁니다. 엔타이어도 이 점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빌드카이트(Buildkite), 디포(Depot)와 손잡고 기존 깃허브 액션스 기반 워크플로를 새 플랫폼으로 옮길 수 있게 지원합니다.
개발자는 빌드카이트의 변환 도구나 디포 CI를 이용해 기존 워크플로를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전환이 끝나면 코드가 푸시될 때마다 빌드와 테스트가 자동으로 실행되고, 그 결과가 트레일에 반영됩니다.
파트너사 CEO들의 발언도 같은 맥락입니다. 빌드카이트의 케빈 군든 CEO는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소프트웨어 변경 사항의 처리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포의 카일 갤브레이스 CEO는 병목이 코드 작성에서 그 이후의 모든 단계로 옮겨갔다며, 빠르고 안정적인 CI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코드를 쓰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검증과 배포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업계 공통의 고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엔타이어는 어떤 회사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까
엔타이어는 지난 2월 6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97억 원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시드 단계에서 이 정도 규모라면 시장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갑니다. 현재는 깃허브, 마이크로소프트, 아틀라시안, 디지털오션, 레드버블 출신 인력을 포함한 50명 규모의 글로벌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번 출시 전에도 저장소 미러링 기능과 에이전트 세션을 추적하는 엔타이어 CLI를 먼저 공개했습니다. 흩어져 있던 기능을 이번 독립형 깃 포지로 한데 묶은 셈입니다.
로드맵도 공개됐습니다. 깃 노드 자체 호스팅, 공개 저장소, 에이전트 세션 실시간 스트리밍, 외부 개발 도구와의 추가 통합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전략은 단계적입니다. 처음에는 AI 중심으로 일하는 개발팀에 집중하고, 이후 오픈소스 프로젝트 관리자와 대기업으로 대상을 넓힌다는 계획입니다. 지금 당장 모든 개발자를 겨냥하는 게 아니라, AI 에이전트를 적극적으로 쓰는 팀부터 공략하겠다는 뜻이죠.
마무리: 병목은 이제 ‘코드 작성’이 아니라 ‘검증’이다
이번 엔타이어 출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AI 코딩 에이전트가 퍼지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병목이 코드를 쓰는 단계에서 검증, 테스트, 병합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엔타이어는 개발자가 모든 변경 사항을 직접 읽는 방식에서, AI 평가 결과와 실행 이력을 바탕으로 개발 과정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다만 냉정하게 볼 부분도 있습니다. 푸시 속도 89배, 토큰 절감 71%는 모두 회사가 제시한 수치입니다. 그리고 AI 평가만으로 코드의 안전성과 정확성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지는 실제 개발 현장에서 검증이 필요합니다. 코드를 한 줄도 안 읽고 병합해도 괜찮을지는 결국 평가 기준을 얼마나 촘촘하게 짜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깃허브 중심으로 굳어진 개발 생태계에서 엔타이어가 얼마나 빨리 이용자를 모을지도 지켜볼 만합니다. 깃허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깃허브의 약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개발 플랫폼 경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꽤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