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AI 챗봇을 만들어 놓고 한 달 뒤 접속 로그를 열어봤더니, 개발팀과 보고용 시연 때 들어온 계정이 전부였다는 이야기. 기업 AI 프로젝트를 해 본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거나 겪어봤을 장면일 거예요.
그래서 이 숫자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임직원 70% 이상. 현대차그룹이 2023년에 도입한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에이치 챗을 쓰는 비율이에요. 직원 열 명 중 일곱 명 넘게 업무에 AI를 쓴다는 건, 기술이 좋아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뭔가 다른 게 맞물려 돌아가야 나오는 숫자죠.
저는 2024년부터 국내 대기업에서 AI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현대차그룹의 발표를 구경꾼의 마음으로만 읽을 수가 없었어요. 발표 중에 나온 한 문장이 제 경험과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이 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AX 성과를 차근차근 짚어보면서, 현장에서 제가 느낀 점을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소프티어 테크톡 오프데이 2026, 무엇을 공개했나
현대차그룹은 21일과 22일 이틀간 서울 양재 본사에서 소프티어 테크톡 오프데이 2026을 열었습니다. 2023년부터 사내에서만 운영하던 기술 컨퍼런스를 올해 처음 외부에 문 열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국내 기업 IT 리더들을 초청해서 실제 적용 사례와 기술적 과제를 공유했습니다.
첫날에는 현대차·기아 ICT 담당 진은숙 사장의 기조연설에 이어 AI 여정을 위한 준비, AI를 통해 얻은 비즈니스 성과, AI의 미래라는 세 개의 대담 세션이 이어졌고요. 둘째 날에는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데이터와 클라우드 같은 인프라 기술부터 생산, 물류, 보안 분야 활용 사례까지 열두 개 기술 세션이 진행됐습니다.
대외에는 성과와 전략을 보여주고, 대내에는 실무 기술을 퍼뜨리는 투 트랙으로 운영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밖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한다는 걸 보여주면서 안으로는 현장이 따라올 수 있게 판을 깔아준 셈이니까요. 기업이 AI 전환을 말할 때 가장 놓치기 쉬운 게 바로 이 안쪽 확산이거든요.
DX가 깔아둔 길 위에서 AX가 달린다
현대차그룹의 AX 전략은 디지털 전환로 구축한 데이터 인프라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이번 발표에서 제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숫자를 보면 이해가 갑니다. 전 세계 약 1,200만 대의 커넥티드카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모아 약 140페타바이트 규모의 차량 센서 데이터를 확보했고, 고객, 품질, 판매 같은 수십 개 법인의 운영 데이터를 7,000개 이상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통합해서 관리한다고 해요. 생성형 AI가 대중화되기 한참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기반입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이해합니다. DX가 데이터를 모으고 흐르게 하는 도로를 깐 일이라면, AX는 그 도로 위에 무엇을 태워서 달리게 할지를 정하는 일이라고요. 도로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차를 사 와도 갈 곳이 없습니다. 반대로 도로가 잘 깔려 있으면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 위에 올려보는 데 드는 비용이 확 줄어들어요.
현장에서 AI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데이터가 이미 정리돼 있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아는 조직은 AI를 붙이는 데 몇 주면 되는데, 데이터가 부서마다 엑셀과 공유폴더에 흩어져 있는 조직은 AI 이전에 데이터를 찾는 데만 몇 달이 갑니다. 모델 성능은 그다음 문제예요. AI 프로젝트의 절반은 사실 데이터 프로젝트라는 말,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임직원 70%가 쓰는 에이치 챗, 비결은 무엇일까
에이치 챗은 2023년에 도입된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입니다. 지금은 그룹 임직원 70% 이상이 쓰는 업무 도구로 자리 잡았고, 지난 7월부터는 정부 보안 기준을 지키는 환경에서 자율주행과 수소 같은 국가핵심기술 분야까지 활용 범위를 넓혔다고 해요.
여기서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공통 플랫폼이라는 점이에요. 부서마다 따로 챗봇을 만들었다면 이런 사용률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한곳에서 로그인하고, 한곳에서 쓰고, 한곳에서 보안과 권한을 관리하는 구조가 쓰는 사람에게도 관리하는 사람에게도 훨씬 편하거든요.
다른 하나는 보안 신뢰입니다. 국가핵심기술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는 건, 그만큼 보안 기준을 충족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뜻이에요. 기업 현장에서 AI 확산이 막히는 가장 흔한 이유가 사실 기술이 아니라 “이 데이터를 넣어도 되나요”라는 불안이거든요. 폐쇄망이든 규제 환경이든, 이 불안을 구조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으면 직원들은 결국 개인 계정의 외부 AI로 몰래 돌아갑니다. 70%라는 수치는 그 불안을 덜어줬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73개 공정에 단일 모델, 표준화가 만든 힘
생산 현장 사례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공장별로 따로 굴리던 차량 식별번호 인식 AI를 하나의 모델로 통합해서 국내외 73개 공정에 적용했다고 해요. 차량 조립 순서가 틀리지 않았는지 잡아내는 기능도 여러 생산 현장이 공통으로 쓰게 했고요.
이게 왜 대단한 일이냐면, 공장마다 모델이 따로 있으면 관리해야 할 대상이 공장 수만큼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모델이 열 개면 업데이트도 열 번, 오류 대응도 열 번, 성능 점검도 열 번이에요. 어느 한 곳에서 개선한 성과가 다른 곳으로 퍼지지도 않고요. 하나로 합치면 한 번 개선한 성능이 73곳에 동시에 반영됩니다.
기업 AI 구축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중복을 자주 만나요. 비슷한 문제를 부서마다 따로 풀고 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만든 결과물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 상황이죠. 처음에는 부서 단위로 빨리 만드는 게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유지보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표준화는 지루한 작업이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가장 큰 수익을 돌려주는 투자예요.
10분 걸리던 정보 탐색이 20초로
판매와 정비 쪽 사례도 현장 감각이 살아 있었어요. 차량 판매 수요 계획은 AI가 먼저 제안을 내놓고, 정비 AI는 공식 매뉴얼에 근거해서 판단 근거를 함께 보여주며 정비사를 돕는다고 합니다. 부서별로 흩어져 있던 업무 정보를 한데 모은 통합 검색 시스템은 정보를 찾는 시간을 약 10분에서 20초로 줄였고요.
저는 정비 AI가 근거를 같이 제시한다는 대목에 밑줄을 쳤습니다. 현장에서 AI를 쓰는 사람은 답만 받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 답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믿고 씁니다. 특히 정비처럼 틀리면 안 되는 영역에서는 근거 없는 정답이 오히려 위험하죠. 출처를 보여주는 설계는 기술적 장식이 아니라 현업이 AI를 신뢰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입니다.
10분이 20초가 된다는 숫자도 곱씹어볼 만해요. 한 번 찾을 때 9분 40초를 아끼는 건데, 이게 수만 명이 매일 몇 번씩 반복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됩니다. 화려한 에이전트가 아니라 검색 하나를 제대로 고쳤을 뿐인데도 조직 전체의 체감이 달라지는 거예요. AI 전환의 성과는 의외로 이런 평범한 곳에서 많이 나옵니다.
성패를 가른 건 기술이 아니라 문제 정의였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현대차·기아 머신러닝랩 박근한 상무의 말입니다. AI 과제의 성패를 가른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반영한 명확한 문제 정의와 공통 플랫폼, 그리고 현업 부서가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데이터 관리 체계였다는 내용이에요.
읽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대기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은 결론과 거의 같았거든요.
프로젝트가 막히는 지점을 돌아보면 모델이 모자라서였던 경우가 생각보다 드뭅니다. 훨씬 자주 마주치는 건 “그래서 이걸로 무슨 문제를 풀려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답이 모호한 상황이에요. 요구사항이 “AI로 뭔가 좋아지게 해 주세요” 수준이면, 개발자는 가장 그럴듯한 데모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데모는 박수를 받지만 현업의 하루는 바뀌지 않아요.
반대로 현업이 “이 문서를 찾는 데 하루에 몇 번, 한 번에 이만큼 걸립니다, 이걸 줄이고 싶어요”처럼 구체적으로 문제를 말해주는 프로젝트는 성공 확률이 확연히 높았습니다. 목표가 선명하니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정확도를 어디까지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성과를 잴지가 자연스럽게 정해져요. 좋은 문제 정의는 프로젝트의 절반을 미리 해결해 줍니다.
그리고 이건 개발자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현장의 문제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AI 엔지니어도 정비사가 어떤 순간에 막막해지는지, 구매 담당자가 어떤 자료를 매번 뒤지는지는 모릅니다. 문제 정의의 주도권은 결국 현업이 쥐어야 해요.
지속 가능한 데이터는 현업이 주인이어야 한다
박 상무가 말한 세 번째 요소, 현업 부서가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데이터 관리 체계에 대해서는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AI 시스템을 처음 구축할 때는 데이터를 한 번 싹 정리해서 넣어요. 이때 성능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업무는 계속 바뀌고, 문서는 계속 새로 생기고, 규정은 개정되고, 제품은 단종됩니다. 데이터를 처음 정리했던 팀이 떠나고 나면 그 데이터는 서서히 낡아가요. 6개월 뒤에 AI가 이미 폐기된 규정을 자신 있게 알려주는 일이 벌어지는 게 바로 이때입니다.
데이터가 계속 살아 있으려면 매일 그 데이터를 만들고 고치는 사람이 관리에 참여해야 해요. 문서를 새로 올리는 담당자, 규정을 개정하는 부서, 현장 노하우를 쌓는 팀이 직접 주인 의식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IT 부서나 AI 팀이 모든 데이터를 대신 관리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기업 AI 프로젝트에서 시스템 구축만큼이나 운영 체계를 설계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데이터를 갱신하는지, 갱신하기 쉬운 구조인지, 오래된 정보를 걸러내는 장치가 있는지 같은 것들이요. 구축은 한 번이지만 운영은 계속되니까요.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이 부분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는 게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비개발자가 직접 만드는 AI, 에이치 런치
현대차그룹은 이 방향성을 다음 단계에서도 이어갑니다. 이달 중에 에이치 런치라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인데, 비개발자 임직원이 직접 만든 AI 업무 도구를 사내 서비스로 배포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라고 해요.
현업이 문제를 가장 잘 안다는 앞의 논리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행보입니다. 개발팀에 요청서를 쓰고 기다리는 대신, 문제를 아는 사람이 직접 도구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니까요. 요구사항이 개발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손실이 사라지고, 개발팀 병목도 풀려요.
물론 걱정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면 품질과 보안이 들쭉날쭉해질 수 있고, 비슷한 도구가 난립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 플랫폼이 얼마나 안전한 기본값과 검증 체계를 갖추느냐가 성패를 가를 겁니다. 만드는 자유와 지키는 규율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저도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이에요.
에이전트에게도 신분증이 필요하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개발자다운 시선으로 본 부분이 에이전트 관리 체계입니다. 현대차그룹은 AI 에이전트에 개별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활동 이력을 기록하는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데이터 삭제 같은 중요한 작업은 사람의 승인을 거치게 해서 자율성과 통제를 함께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AI 에이전트가 단순히 답변만 하는 단계를 넘어서 시스템을 직접 조작하고 데이터를 읽고 쓰는 단계로 가면, 누가 무엇을 했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 직원에게 사번과 권한이 있는 것처럼 에이전트도 신원이 있어야 사고가 났을 때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사람의 승인 단계를 넣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에이전트가 99번을 잘하다가 한 번 실수했는데 그게 데이터 삭제라면,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생길 수 있거든요. 전부 맡기지도 않고, 전부 막지도 않고, 위험도에 따라 사람이 개입할 지점을 정해두는 설계가 앞으로 기업 에이전트의 기본이 될 거라고 봅니다. 저도 에이전트 시스템을 설계할 때마다 어디까지 자동으로 두고 어디에서 사람을 세울지를 가장 오래 고민해요.
GPU 1만 장과 피지컬 AI, 그다음 단계
현대차그룹의 인프라 계획도 구체적입니다. 2026년 4분기부터 GPU 기반 AI 서비스 운영 역량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2029년 하반기에는 새만금 AI 데이터센터에서 1만 장 이상의 GPU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해요. 이를 바탕으로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같은 피지컬 AI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규모가 워낙 커서 대부분의 기업에는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순서를 보면 배울 점이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데이터 인프라를 먼저 깔았고, 그 위에 사내 AI 플랫폼을 올려 사용 문화를 만들었고, 현장 적용으로 성과를 입증한 다음에야 대규모 연산 인프라에 투자하는 흐름을 탔어요. GPU부터 사고 용도를 찾는 게 아니라, 쓸 곳이 분명해진 뒤에 인프라를 키우는 거죠.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은 1만 장은커녕 GPU 몇 장도 부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순서를 작은 규모로 따라가면 돼요. 작은 데이터 정리, 작은 공통 플랫폼, 작은 현장 성과. 규모만 다를 뿐 방향은 같습니다.
마무리, AX는 기술을 도입하는 일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
정리해 볼게요. 현대차그룹은 소프티어 테크톡 오프데이 2026에서 임직원 70% 이상이 쓰는 에이치 챗, 73개 공정에 적용한 단일 VIN 인식 모델, 정보 탐색 시간을 10분에서 20초로 줄인 통합 검색 같은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1,200만 대 커넥티드카에서 모은 약 140페타바이트의 데이터와 7,000개 이상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있었고요. 다음 단계로는 비개발자용 에이치 런치, 에이전트 신원 관리와 승인 체계, 2029년 1만 장 이상 GPU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메시지는 박근한 상무의 말에 담겨 있었어요. 성패를 가른 건 AI 기술이 아니라 명확한 문제 정의, 공통 플랫폼, 현업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데이터 관리라는 것. 진은숙 사장이 AX를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 발표가 더 반가웠습니다. DX가 데이터 인프라라는 도로를 깔았다면, AX는 그 위에서 현업이 풀고 싶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일이에요.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들뜨기 쉬운 시기지만, 우리 조직의 문제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데이터를 계속 가꿀 수 있는 구조인지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어도, 이 질문은 오래 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