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서웠던 나, 사회불안장애를 극복하기까지의 3년 – 혼자가 편한 게 아니었구나

대학 새내기 때였어요. 처음으로 학과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20명 정도가 다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손에 땀이 났어요. 누군가 “자기소개 좀 해볼래?”라고 물었을 때, 입을 열고 싶어도 목이 메었어요. 한 마디를 겨우 꺼냈는데, 목소리가 떨리는 게 자신도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려고만 하면 심장이 철렁거렸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회의에서 발언하려고만 하면 온몸에 기운이 빠졌고,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하려고만 해도 불안감이 밀려왔어요.

처음엔 내가 그냥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냐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 친구들은 내성적이어도 필요하면 발표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전화도 했거든요. 나는 안 됐어요.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몸이 거부 신호를 보냈어요.

지금 MZ세대라고 불리는 우리 세대에서 사회불안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고 하네요. 혼자가 편해서 집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사람이 무서워서인 경우가 많다고. 나도 그 중 한 명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이 불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완벽한 치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사람을 만날 수 있거든요.

혼자가 편한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웠던 거였다

사회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어요. 내가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인식한 게 대학 2학년 때였거든요.

그 때쯤이면 내 친구들은 다 동아리도 들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나는 왜 안 될까 싶었어요. 나는 그냥 집에만 있었어요. SNS에는 친구들의 사진들이 가득했어요. 여행 사진, 밥 먹는 사진, 술 마시는 사진. 다 혼자인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집에 있는 게 행복했던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외로웠어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그룹 채팅에서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핸드폰을 내팽개치고 싶었어요. 술자리 약속이 생기면 이틀 전부터 불안했어요. 약속 날 아침이면 배가 아팠어요. 정말이에요. 신체적으로 반응했어요.

부모님은 “그냥 나가서 놀아”라고 말씀하셨어요. 친구들은 “넌 왜 안 나와?”라고 물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내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나도 처음엔 몰랐어요. 그냥 나는 집돌이, 집순이일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심리상담센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 상담사가 물었어요. “혼자 있는 게 좋으신가요?” 나는 잠시 생각했어요. 그리고 눈물이 났어요. “아니요. 난 그냥… 사람이 무서워요.” 그 순간 내가 뭔가 잘못된 건지, 약한 건지, 아니면 진짜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처음으로 직면한 거 같았어요.

진단은 사회불안장애였어요. 사람들 앞에서 평가받을 거 같은 두려움, 창피당할 거 같은 두려움, 그리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욕구. 모든 게 일치했어요. 나는 약한 게 아니었어요. 내 뇌가 위협을 과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완전히 다른 문제였어요.

처음 바뀌기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 관점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상담사가 자주 던졌던 질문이 있어요. “그 상황에서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 말을 더듬으면 그게 정말 끝날 일일까요?” “사람들이 당신을 정말로 판단하고 있을까요?”

처음엔 이 질문들이 짜증났어요. 당연히 일어날 수 있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상담사는 계속 물었어요. 몇 달이 지나니까 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회사 회의에서 실수가 일어났어요. 내가 발표 중에 숫자를 잘못 읽었거든요. 옆에 있던 사람이 지적해줬어요. 예전 나라면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을 거고, 밤새 자책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날은 달랐어요. 내가 실수했고, 고쳤고, 넘어갔어요. 누군가는 내 실수를 까먹고 있을 거고, 누군가는 내 실수를 챙기지도 않고 있을 거였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받는 공포의 대부분은 내가 만든 거였어요. 사람들이 실제로 나를 판단하는 것보다, 내가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 거라고 가정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가정 위에 공포를 쌓고 있었어요.

관점이 바뀌니까 조금씩 달라졌어요. 회의에서 손을 들기가 조금 덜 두려워졌어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침묵이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자연스럽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보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 시작했어요.

작은 행동이 쌓여서 변화가 되었다

상담사가 제시했던 과제들은 정말 작았어요. 처음엔 하루에 한 번 남과 눈을 맞추기. 그 다음은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기. 그 다음은 누군가에게 작은 질문하기. 정말 초급의 과제들이었어요.

하지만 내게는 이런 작은 것들이 산 같았어요. 카페에서 주문할 때 목소리가 떨렸어요. “카페라떼 하나 주세요”라고 겨우 말했어요. 하지만 나온 거예요.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어요. 역시 내 가정이 틀렸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3개월은 정말 느렸어요. 아무 변화가 없는 거 같았어요. 하지만 6개월이 지나니까 달라진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학과 발표를 했어요. 손이 떨렸어요. 목소리도 떨렸어요. 하지만 했어요. 누군가가 질문을 했을 때 답변도 했어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했다는 게 중요했어요. 그 다음 발표는 조금 덜 무서웠어요. 세 번째 발표부터는 떨림이 남아있지만 견딜 수 있었어요.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 회의는 혼자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매일 그 상황을 반복하다 보니, 신체가 적응하기 시작했어요. 신체도 학습한다는 걸 알았어요. 처음엔 불안에 떨렸던 신체가, 계속 경험하다 보니 “아, 이건 위험한 게 아니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조금씩 진정되었어요.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배운 것들

1년 반 정도 상담만 받다가, 약물치료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어요. 약을 먹으면 중독될까봐, 평생 먹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상담사가 설명해줬어요.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약이 내 신체의 불안 반응을 조절해줘서, 그 상태에서 내가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약을 먹기 시작한 첫 주, 별 변화가 없었어요. 하지만 2주 정도 지나니까 달라졌어요. 여전히 불안은 있었지만, 불안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았어요. 마치 불안이 벽 너머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느껴지지만, 나는 그걸 넘어서서 행동할 수 있었어요.

그 상태가 정말 중요했어요. 그전까지는 불안이 올라오면 그게 전부가 되어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약을 먹으니까 불안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늘었어요.

약 없이 내가 할 수 없던 것들을 약을 먹으면서 했어요. 직장 면접을 봤어요. 떨렸지만 했어요. 팀 프로젝트에서 리더 역할을 했어요. 떨렸지만 했어요. 친구들과 여행도 갔어요. 떨렸지만 갔어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내 신체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 이 상황은 실제로 위험하지 않구나”라고. 약이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해줬어요. 약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어요.

누군가에게 말하기, 가장 큰 변화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친한 친구에게 내 상태를 이야기했어요. 오후 3시쯤 카페에서였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나 사실 사회불안장애가 있어”라고 말했어요.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나요. “어? 근데 너 요즘 되게 괜찮은데?” 웃겼어요. 맞아. 나는 요즘 괜찮아 보이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불안이 있었어요. 그냥 이제 그걸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였어요.

그 친구는 정말 이해해줬어요.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미리 말해. 불안할 것 같은 상황이 있으면 미리 말해주면, 내가 옆에 있어줄게.”

이 말이 정말 도움이 됐어요. 그 이후로 술자리나 단체 약속이 있을 때, 나는 미리 친구에게 말했어요. “이번엔 좀 불안할 것 같아. 내 옆에 있어줄래?” 그럼 친구는 나 옆에 있어줬어요. 처음엔 친구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나도 혼자 할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었어요.

가족에게도 이야기했어요. 엄마가 처음엔 이해를 못 하셨어요. “병이야? 그냥 나가서 놀면 되지.” 이런 반응이었거든요. 하지만 내가 설명하고, 상담사 말도 들려드리고, 약에 대해서도 설명드렸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엄마도 이해하셨어요. 그리고 지금은 가장 내 편이에요. “너 괜찮아? 약 먹고 있어? 마음 편히 가”라고 말씀해주세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처음엔 부끄러웠어요. 약해 보일까봐, 이상하게 보일까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말하고 나니까 오히려 더 편했어요. 혼자 숨기면서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누군가가 나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진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 내가 여전히 불안한 이유들

지금도 나는 완전히 불안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불안해요. 새로운 상황에 가면 심장이 철렁거려요. 대규모 모임에 가면 여전히 조금 긴장돼요. 중요한 발표 전날은 밤을 새우기도 해요.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요. 불안이 있어도 내가 행동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 불안이 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거.

최근에 새 직장에 가야 할 상황이 생겼어요. 면접을 보고, 입사 서류도 작성하고, 첫 출근도 했어요. 예전의 나라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불안으로 도망쳤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했어요.

첫 출근 날 아침, 나는 심하게 불안했어요. 하지만 출근했어요. 첫 회의도 떨렸어요. 하지만 들었어요. 첫 과제를 받을 때도 두려웠어요. 하지만 받았어요. 이제 나는 불안해도 행동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게 가장 큰 변화예요.

혼자가 편한 게 아니었어, 사람이 무서웠던 거야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처럼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집에만 있고 싶다고. SNS 팔로우는 많은데 실제로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하지만 혼자가 편한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운 거일 수도 있어요. 사회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나도 몰랐거든요. 내가 원래 이런 성향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내 신체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였어요.

지금 MZ세대에서 사회불안이 증가하고 있다고 해요. SNS 때문일 수도, 경쟁 때문일 수도, 그냥 우리가 예전 세대보다 더 민감한 신경을 가지고 태어난 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너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고, 극복하고 있다는 거.

그리고 절대 모르니까 쉽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3년 반을 걸려서 지금의 상태에 도달했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불안은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산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너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뻔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정말 진심이에요. 너도 할 수 있다는 거. 지금 당신이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 무섭다고 해도,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해도, 나처럼 사회불안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 당신은 변할 수 있어요.

처음엔 정말 작게 시작해요.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기. 이렇게 작게. 그리고 계속 반복해요. 나는 3년을 걸렸지만, 누군가는 더 빨리 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내가 증명하잖아요. 그 길 끝에는 뭔가가 있다는 걸.

지금 나는 사람을 만나요. 회의도 가고, 발표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요. 완벽하게 하지는 못해요. 여전히 실수도 하고, 어색한 침묵도 있고, 불안도 있어요. 하지만 한다는 거. 그게 다예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그리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으세요. 약을 먹는 것도, 상담받는 것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약함이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일 수 있어요.

사회불안장애는 끝이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진정한 관계가 뭔지 배우는 과정이 될 수 있어요. 나처럼 말이에요.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있고, 불안도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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