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쯤 누가 “SK하이닉스 400만 원 간다”고 했으면 나는 속으로 웃었을 거다. 그런데 2026년 5월 말,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미 233만 원을 찍었다. 삼성전자도 31만 원을 넘어섰다. 노무라증권은 삼성전자 목표가 59만 원, 하이닉스 400만 원을 제시했다. 더 이상 비웃을 수가 없는 숫자가 됐다.
솔직히 나는 평소에 주식 얘기를 잘 안 한다. 이 블로그도 주가 분석 블로그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왜 이렇게 올랐는지를 이해하는 건, 사실상 “지금 전 세계 AI 인프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 다루는 LangGraph, vLLM, RAG, 멀티에이전트 시스템. 이 모든 게 결국 어딘가의 GPU 위에서 돌아간다. 그리고 그 GPU 옆에는 반드시 HBM이라는 메모리가 붙어 있다. 이 연결고리를 따라가면 왜 한국 반도체 두 회사의 주가가 코스피 전체를 끌고 가는지가 보인다.
그러니 이 글은 주식 추천이 아니다. AI 인프라의 가장 밑바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엔지니어 시각으로 풀어보는 글이다. (당연히 투자 권유가 아니며,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 주가가 얼마나 올랐나
숫자로 보면 실감이 난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5월 29일 기준 233만 원대에서 거래됐다. 52주 최저가가 20만 원대였던 걸 생각하면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10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삼성전자도 같은 시점 31만 원을 넘겼다. 두 종목 모두 사상 최고가 부근에서 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목표주가는 더 공격적이다. SK증권은 5월 초 삼성전자 50만 원, SK하이닉스 300만 원을 제시했고, 노무라증권은 한발 더 나아가 삼성전자 59만 원, SK하이닉스 400만 원까지 올려 잡았다. “61만전자, 400만닉스”라는 표현이 기사 제목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이거다.
이게 단순히 분위기로 오른 게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노무라증권은 올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7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KB증권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7배 급증한 67조 원, 영업이익률 77.6%로 추정했다. 영업이익률 77%라는 숫자는 제조업에서 보기 힘든 수치다. 이게 지금 메모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핵심은 단 하나, HBM이다
주가 상승의 동력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HBM이다. 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HBM이 뭔지 간단히 짚고 가자. 일반 D램을 평면으로 쓰는 대신,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대역폭)를 극단적으로 넓힌 메모리다. AI 연산에서 GPU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데, 이때 메모리가 데이터를 충분히 빠르게 공급하지 못하면 GPU가 아무리 빨라도 병목이 생긴다. HBM은 그 병목을 푸는 핵심 부품이다.
여기서 구조적인 포인트가 나온다. GPU 성능이 높아질수록 HBM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엔비디아가 더 강력한 AI 칩을 내놓을수록, 그 칩에 붙는 HBM의 양과 사양도 올라간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에는 HBM4가 탑재되는데, 이 플랫폼의 메모리 요구 사양만으로도 세계 낸드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소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이 HBM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사실상 전 세계에 셋뿐이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 이 중에서 SK하이닉스가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다. UBS는 엔비디아 루빈 플랫폼에 탑재될 HBM4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가 약 70%의 점유율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전 세계가 AI에 미쳐서 GPU를 사들이는데, 그 GPU에 필수로 들어가는 HBM을 만들 줄 아는 회사가 한국에 둘이나 있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할 수 있는 회사는 손에 꼽는다. 가격이 안 오를 수가 없다.
왜 “지금”이고 왜 “1년 넘게”인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AI 붐은 2023년부터 시작됐는데 왜 한국 메모리 주가는 2025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올랐을까.
초기 AI 붐의 수혜는 엔비디아가 거의 독식했다. GPU를 만드는 회사니까. 그런데 AI 모델이 점점 커지고, 추론(inference) 수요가 폭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GPU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GPU에 데이터를 먹여줄 HBM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게 명확해진 거다. AI 인프라 투자의 무게중심이 ‘GPU 확보’에서 ‘GPU + 메모리 패키지 확보’로 옮겨갔다.
또 하나 결정적인 변화가 있다. 메모리 산업이 ‘분기 시황 장사’에서 ‘계약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호황과 불황이 2~3년 주기로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이었다. 좋을 때 잠깐 벌고, 나쁠 때 오래 버티는 구조. 그래서 주식 시장도 메모리 기업에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매겼다. “언제 또 불황 올지 모르잖아.”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AI 데이터센터 고객들이 연간 단위를 넘어 3~5년 장기공급계약(LTA)을 요구하고 있다. 공급이 부족하니까 고객들이 미리 물량을 확보하려고 줄을 서는 거다. 일부는 선급금까지 내겠다고 한다.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몇 년치 매출이 미리 잡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불황이 언제 올까”라는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시장이 매겨온 리스크 프리미엄도 낮아진다. 노무라증권이 “추가적인 주가 재평가 근거”라고 표현한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정리하면, 1년 넘게 오른 이유는 두 가지다. AI 인프라 수요가 GPU에서 메모리로 확산됐고, 메모리 산업의 사업 구조 자체가 안정적인 계약 기반으로 바뀌면서 시장의 평가 잣대가 달라졌다.
공급이 안 따라온다 – 슈퍼사이클의 진짜 엔진
수요가 폭발해도 공급이 빠르게 따라붙으면 가격은 안정된다. 그런데 지금 메모리 시장은 공급이 구조적으로 못 따라오는 상황이다.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SK하이닉스가 용인 클러스터 팹을 단계적으로 짓고 있지만, 공장 하나 완공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2026년 안에 공급이 극적으로 늘어날 수가 없다.
둘째, HBM은 일반 D램보다 생산이 훨씬 까다롭다. 칩을 수직으로 쌓는 공정 자체가 복잡하고, 수율(불량 없이 만들어내는 비율)을 끌어올리기가 어렵다. 같은 양의 웨이퍼로 HBM을 만들면 일반 D램보다 결과물이 훨씬 적게 나온다. 게다가 HBM 생산에 capacity를 쓸수록 일반 D램 생산이 줄어들어서, 범용 D램 가격까지 같이 오르는 연쇄 효과가 생긴다.
실제로 2026년 2분기 메모리 가격은 30~50% 수준의 상승폭을 보이고 있고, 키뱅크캐피털은 2027년 이전까지 메모리 제조사들이 의미 있는 증산에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봤다. 최소한 2027년 중반까지는 수요가 생산 능력을 큰 폭으로 웃도는 심각한 공급 부족이 지속될 수 있다는 예측이다. JP모건은 메모리 업체들이 2027년 물량까지 사실상 완판 상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낸드 컨트롤러 1위 기업 파이슨의 CEO는 더 강한 경고를 했다. AI 서버 수요가 D램과 낸드 공급을 통째로 잠식하면서 2030년 이후까지 공급난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심지어 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한 저마진 소비자 브랜드들이 제품 라인을 철수하는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들어갈 메모리를 AI 서버가 다 빨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듯 다른 위치
두 회사를 같이 묶어서 얘기했지만, 사실 시장에서의 위치는 꽤 다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시장이 ‘HBM 프리미엄’을 인정한 종목이다. 엔비디아 공급망 안에서 가장 먼저, 가장 안정적으로 HBM을 공급해온 회사다. AI 가속기 수요가 커질수록 HBM 공급 능력을 가진 기업의 협상력이 높아지는데, SK하이닉스가 이 구간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주로 평가받고 있다. 주가가 233만 원까지 온 것도 이 프리미엄이 반영된 결과다.
삼성전자는 성격이 좀 다르다. 아직 ‘회복 기대’의 성격이 강하다. 그동안 HBM 시장에서 후발주자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4 양산과 고객사 출하를 경쟁사보다 먼저 공식화하면서, 엔비디아 차세대 베라 루빈향 HBM4 초반 수요를 삼성이 상당 부분 책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JP모건은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HBM 점유율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35%로 상향 조정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삼성전자 주가가 30만 원대를 넘어 그 이상으로 가려면, 단순한 업황 회복을 넘어 HBM 경쟁력 회복을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HBM4가 그 증명의 무대가 되는 셈이다. 삼성이 후발주자 딱지를 떼고 HBM 경쟁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가져오면, 시장의 재평가 폭은 SK하이닉스보다 오히려 클 수도 있다.
이게 내 블로그 주제와 무슨 상관인가
여기서 평소 이 블로그를 보던 분들은 의문이 들 수 있다. AI 엔지니어링 블로그에서 왜 갑자기 주가 얘기를 하나.
답은 단순하다. 우리가 다루는 모든 AI 기술의 물리적 토대가 바로 이 HBM과 GPU이기 때문이다.
LangGraph로 멀티에이전트를 짜든, vLLM으로 LLM 서빙을 최적화하든, RAG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든, 결국 그 연산은 어딘가의 데이터센터 GPU 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GPU의 성능을 실제로 결정하는 게 옆에 붙은 HBM의 용량과 속도다. vLLM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KV 캐시도 결국 메모리 위에 올라간다. 모델이 커질수록, 컨텍스트 길이가 길어질수록, 더 많고 빠른 메모리가 필요하다.
내가 LM Studio로 로컬에서 모델을 돌릴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도 메모리다. VRAM이 부족하면 큰 모델은 아예 못 올린다. 이게 데이터센터 규모로 가면 HBM 확보 경쟁이 되는 거다. AI 인프라의 가장 밑바닥에는 항상 메모리 문제가 있다.
그래서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단순한 주식 이벤트가 아니다. 이건 “전 세계가 AI 연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다. 주가가 오른다는 건 곧 AI 인프라 수요가 진짜라는 시장의 투표다.
앞으로의 전망 – 그래서 계속 오를까
가장 궁금한 질문일 거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신중하게 봐야 한다.
긍정적인 쪽 논리는 명확하다.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장기공급계약으로 매출 가시성이 높아졌으며, AI 인프라 투자는 당분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추론형 AI, 에이전트 AI가 확산될수록 연산 수요는 오히려 더 늘어난다. 구글의 TPU나 LPU 같은 새로운 칩이 등장해도, 이들 역시 메모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메모리 수요를 더 자극한다는 분석도 있다. 전체 반도체 시장이 1조 달러에 근접하는 성장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메모리가 그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신중론도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이다. 짧은 기간에 너무 빨리 올랐기 때문에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올 수 있다. 둘째, AI 사이클이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미 알려진 호재는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됐을 수 있다. 셋째, HBM4가 본격 공급되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가가 떨어질 수 있고, 중국 반도체 업체의 추격도 중장기 변수다. 넷째, AI 투자 자체가 거품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면 메모리 수요 전망도 함께 흔들린다.
여기에 수급 측면 변수도 있다. ETF 자금이 두 종목으로 집중되면서 상승을 강화하고 있는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상장되면서 이 효과가 커졌다. 문제는 이게 양방향이라는 거다. 상승장에서는 자금이 몰려 주가를 밀어 올리지만, 조정장에서는 ETF 환매와 레버리지 리밸런싱이 겹쳐 하락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를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AI 인프라 수요라는 큰 흐름 자체는 진짜다. 이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컴퓨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다만 주가는 그 흐름을 미리 반영하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펀더멘털과 주가의 속도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산업의 방향과 특정 시점의 주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진짜 말해주는 것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이런 기사들이 쏟아지고, 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1년 넘게 올랐나.
핵심은 HBM이다. AI 데이터센터가 GPU를 사들이고, 그 GPU에 필수로 들어가는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사실상 셋뿐이며, 그중 둘이 한국 기업이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구조적으로 못 따라가고, 고객들은 3~5년 장기계약으로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 줄을 선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산업은 변동성 큰 사이클 산업에서 안정적인 계약 산업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배 늘고 영업이익률이 77%에 달하는 건 그 결과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결국 AI다. 전 세계가 AI 연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고, 그 절박함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이 메모리다. 메모리 주가는 AI 인프라 수요가 실재한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다.
앞으로도 오를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공급 부족이 풀리는 2027년 이후, HBM4 경쟁 구도, AI 투자의 지속 가능성 같은 변수들이 방향을 가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LangGraph로 에이전트를 짜고 vLLM으로 모델을 서빙하는 이 모든 작업의 밑바닥에, 지금 전 세계가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그 HBM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AI 시대의 진짜 원유는 데이터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 데이터를 연산으로 바꾸는 정유 시설은 메모리다. 한국이 마침 그 정유 시설을 쥐고 있다.
(이 글은 산업 분석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그 결과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