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후배와 커피를 마셨다. 대학 졸업한 지 2년이 된 녀석이다. 근데 아직 취직을 안 했다고 했다. “뭐, 잠깐 쉬고 있어”라고. 처음엔 “좋은 회사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근데 자세히 얘기해보니, 상황이 더 복잡했다. 일단 지원할 만한 회사가 없다고 한다. 급여는 낮고, 일은 많고, 대우는 별로고. 그래서 “일단 뭔가 배워보고” 취직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게 개인 문제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한국은행이 내놓은 “쉬었음 청년층” 보고서를 봤다. 충격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장 진입을 미루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자리가 없어서” 쉬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쉬는 청년들이 늘었다는 거다.
이건 단순한 취업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갈등, 기대치의 차이,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래서 부모 세대는 이해 못 한다. “일자리가 있으면 일 해야지, 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 하지만 청년 당사자 입장은 다르다. 이 글은 그 차이를 설명하려고 한다.
한은 보고서가 말하는 현실
먼저 한국은행의 보고서 내용을 정리하자. 한은은 최근 “경제일지”라는 이슈노트에서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지연 현상을 분석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만 15~29세 청년 중 “쉬었음”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쉬었음”이 뭔가? 이건 실업 상태가 아니다. 공식 실업자는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았고, 일할 준비가 돼 있는데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 반면 “쉬었음” 상태는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은” 사람이다.
이게 중요한 구분이다. 왜냐하면 취업 의사가 있지만 구직 활동을 안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일할 생각은 있는데, 지금 이 시점에 찾는 게 아니다”는 거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이 “쉬었음” 청년들이 2015년 약 35만 명에서 2024년 약 46만 명으로 늘었다. 9년간 31% 증가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 중에서 “경제활동을 재개할 의사가 있는” 청년들이 자꾸 늘어난다고 했다. 즉, 일시적으로 쉬는 게 아니라, “차라리 쉬겠다”는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청년들은 왜 쉬기로 선택하는가
부모 세대는 이 현상을 이해 못 한다. “일자리가 있으면 일 해야지, 왜 쉬어?” 근데 청년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복잡하다.
첫 번째 이유는 일자리의 질이다. 요즘 청년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를 보면, 대부분 이렇다. 월급 250~300만 원대, 주 52시간 이상 근무, 야근 정상화, 퇴근 후 업무 메시지. 이런 조건이다. 부모 세대는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한다. 20~30년 전 자신들도 비슷한 조건에서 일했으니까.
하지만 청년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월급으로 서울에서 전셋돈을 모을 수 있나? 결혼할 수 있나? 휴식을 취할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이다. 월급 300만 원으로는 1인 생활도 힘들다. 특히 서울에서는. 그래서 “이 정도 월급이면 차라리 학원강사나 프리랜서로 하면서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다.
두 번째는 경력 경쟁이다. 청년들이 경험하는 일자리 경쟁은 정말 치열하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면 학점, 토익, 자격증, 인턴십 경험. 이 모든 게 다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 다니면서도 학원을 간다. 졸업하고도 취업 준비를 계속한다. 이 과정이 너무 길고 불확실해서, “차라리 쉬면서 뭔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세 번째는 심리적 부담이다. 첫 회사 선택이 이후 경력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실이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틀린 선택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기다리겠다”는 심리가 작동한다.
네 번째는 대학원이나 자격증 준비다. 일부 청년들은 “지금 일하는 것보다 대학원 가거나 자격증 따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전원, 또는 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다. 부모 세대는 “일하면서 준비하지?”라고 말하지만, 요즘 시험들은 대학교 4년 내내 준비해도 떨어진다. 그래서 집중하려고 일단 쉬는 거다.
부모 세대의 혼란과 걱정
여기서 부모들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진짜 걱정하니까.
부모 세대는 경험상으로 “일을 안 하면 뒤쳐진다”고 생각한다. 20~30년 전만 해도 그랬기 때문이다. 취직 못 하고 몇 달 쉬면, 그게 경력에 먹칠이 됐다. 회사에서도 “왜 이 기간에 뭐 했어?”라고 물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일단 어디든 들어가”라고 권한다. 나쁜 회사여도, 월급이 적어도, “일단 경험”을 쌓으라는 거다.
또 다른 걱정은 경제적이다. 부모들은 자식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다고 본다. 월급이 낮으면 독립할 수 없고, 독립 못 하면 부모에게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나쁜 회사라도 들어가서 경험을 쌓고 이직해”라고 조언한다.
세 번째는 사회적 낙인이다. 나이가 들면서도 취직을 안 하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 “그 나이에 일을 안 해?” 부모들은 이런 눈초리가 싫어서, “아무튼 어딘가에 다니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하지만 청년들만 탓할 수 없다. 노동시장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첫째, 좋은 일자리가 없다. 통계상으로는 “일자리가 많다”고 하지만,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는 부족하다. 대기업, 공기업, 대형 금융사 같은 곳들은 채용을 극도로 줄였다. 반대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늘었지만, 월급과 복리후생이 좋지 않다. 결국 청년들의 선택지는 줄어든 거다.
둘째, 경력의 가치가 떨어졌다. 예전에는 “어디서 일했는가”가 중요했다. 대기업에 다니면 이후 구직이 쉬웠다. 하지만 요즘은? 대기업도 정리해고를 한다.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그래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늘었다.
셋째, 교육의 가치가 올라갔다. 예전에는 대학만 가면 됐지만, 요즘은 대학원, 자격증, 해외 경험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리가 높아지고 부동산이 비싸지면서, “지금 취직보다는 자기 개발”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10년 뒤를 위해 지금 투자하겠다는 거다.
넷째, 심리적 안정성의 중요성이 올라갔다. 부모 세대는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년 세대는 “나쁜 일자리를 하면서 정신건강을 해칠 바에, 차라리 쉬면서 준비하겠다”고 생각한다. 앞의 세대들이 “번아웃” “우울증” “직장 갑질”의 피해자가 되면서, 후배들은 배운 거다. “일이 있다고 다 하는 게 아니다”는 걸.
쉬었음 청년들의 실제 모습
한은의 보고서가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는, “쉬었음” 청년들이 사실은 활동적이라는 거다.
일부는 학원을 다닌다. 고시 준비, 자격증 준비, 어학 공부 같은 것들이다. 이건 명목상 “쉬었음”이지만, 실제로는 엄청 열심히 준비하는 거다. 오히려 일하는 사람보다 더 바쁠 수도 있다.
또 다른 일부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통계상 “쉬었음”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수입이 있다. 번역 일, 디자인 일, 콘텐츠 제작 같은 것들이다. 월급은 불규칙하고 비보험이지만, 자유로움이 있다.
또 다른 일부는 정말로 쉰다.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심리적으로 회복하려고 한다. 전 직장에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거나,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건 부모 세대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심리 건강 관점에서는 필요한 시간이다.
부모는 뭘 할 수 있나
만약 당신이 자식이 쉬고 있는 부모라면, 뭘 해야 할까?
첫째, 자식의 계획을 물어보자. “왜 쉬고 있는가?” “언제까지 쉬를 건가?” “그 사이에 뭘 할 건가?” 이런 질문들이다. 답변이 명확하면, “알겠다, 그동안 충분히 준비해”라고 말해주는 게 낫다. 막연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 세워봐”라고 조언해주는 거다.
둘째, 경제적 지원의 한계를 정하자. 부모도 경제 상황이 있다. “6개월까지 지원하겠다” “이 정도 금액까지만 가능하다”는 식으로 분명히 하는 게 좋다. 그럼 자식도 그 안에서 계획을 세운다.
셋째, 정보를 공유하자. 요즘 노동시장 정보, 유망 직종, 채용 정보 같은 것들이다. 자식들이 스마트폰으로 많이 찾지만, 부모의 관점과 경험에서 나온 조언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넷째, 멘토링을 해주자. 자식의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해보자. “앞으로 뭘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지금 뭘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대화들이다.
청년은 뭘 해야 하나
청년 당사자라면, 쉬는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
첫째, 명확한 목표를 세우자. “일자리가 나쁘니까 쉬겠다”는 건 충분하지 않다. “이걸 배우고 나면 더 좋은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목표가 필요하다.
둘째, 시간을 정하자. “언제까지 쉬울 건가?”를 정해야 한다. 너무 오래 쉬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 보통 3~6개월이 적당하다.
셋째, 활동적으로 보내자.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학원이든, 프리랜서든, 봉사든 뭔가는 해야 한다.
넷째, 정기적으로 상황을 평가하자. “진짜 내 목표를 이루고 있나?” “시간을 잘 쓰고 있나?” 이런 질문들을 자주 던져야 한다.
결론: 세대 간 이해의 필요성
한은의 보고서가 강조하는 게 뭐냐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거다. 청년들이 게으러져서 쉬는 게 아니라, 노동시장이 변했고, 기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거다.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의 갈등은 이 이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부모는 “일단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청년은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둘 다 맞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하다.
청년들은 부모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일자리 질의 하락, 경력의 불확실성, 정신 건강의 중요성 같은 것들이다. 부모들은 이를 인정하고, “그래, 쉬어야겠다면 의미 있게 쉬어”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반대로 청년들도 부모의 걱정을 이해해야 한다. 부모들이 “아무튼 뭐든 하라”고 말하는 건, 자식이 뒤쳐질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확한 계획과 정기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결국 이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의 문제다. 노동시장이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교육 체계가 더 현실적이 되고,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 그때까지 부모와 자식 모두 서로를 이해하면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