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좀 숨 쉬자.” 요즘 월급날이 되면 자신의 통장을 들여다보는 40대 회사원 김 과장의 한숨이다. 아내에게 용돈을 청할 때면 항상 나오는 대사가 있다. “30만 원 정도만 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암묵적인 기준으로 통해온 월 용돈 30만 원. 하지만 2026년의 현실에서 이 금액은 더 이상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기혼 남성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월 소득 400만 원 기준으로 가장 보편적인 월 용돈액으로 꼽히는 30만 원. 이 수치는 사실 지난 10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점심값이 1만 2천 원을 넘나들고 있고, 일상의 모든 물가가 상승하면서 기혼 남성들의 지갑은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의 가격 인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점심 한끼가 1만 원대… ‘런치플레이션’의 습격
서울 강남역 부근 회사에 다니는 35세 이모 과장은 최근 몇 달 사이의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가 자주 가던 정식당의 점심값이 한 달 만에 800원 올랐다는 것. 이는 단순한 개별 음식점의 인상이 아니었다. 서울의 대형 상가나 오피스 밀집지역의 식당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었다. 예전에 9천 원이던 점심이 이제는 1만 원대 초반, 좀 더 나은 밥을 먹으려면 1만 2천 원 이상은 기본이다.
직장인들이 월평균 20일을 회사에 출근한다고 가정할 때, 점심만 먹어도 월 20만 원이 넘어간다. 여기에 간식비, 커피, 그리고 예상치 못한 회식비까지 더하면 용돈 30만 원은 식비만으로도 거의 소진되는 셈이다. 많은 남성들이 이를 가리켜 ‘런치플레이션’이라고 부르며 한탄하고 있다. 음식값이 계속 오르는 악순환 속에서 직장인들의 실질 용돈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도 예외가 아닌… 30만 원의 한계
흔히 맞벌이 가구라면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자녀가 2명 이상인 가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교육비, 보육료, 용품비 등이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주택 마련을 위한 거액의 대출 원리금이 매달 빠져나간다면, 가계의 형편은 외벌이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영유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의 경우 보육 비용만으로 월 150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아이가 커가면서 필요한 교습비, 학원비, 문화생활비까지 고려하면 가정 경제는 항상 빠듯하다. 남편이 받는 용돈 30만 원이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금액이 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내도 번다고 해서 가정 경제가 넉넉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많은 가정이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3040 직장인의 ‘용돈 비극’… 심리적 압박까지
물가 상승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다. 회사에서는 관리직으로 책임과 스트레스가 많은데, 집에 와서 아내에게 “용돈을 좀 더 달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심리가 작동한다. 특히 자신이 버는 월급보다 용돈이 적어야 한다는 한국 가정문화의 관습이 남성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준다.
실제로 30대 후반의 과장급 직원들 중 일부는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에 참석하기를 꺼리기 시작했다. 용돈이 부족해서다. 회식을 가면 한두 번의 술값만 해도 월 용돈의 상당 부분이 날아간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회식을 거절하거나, 참석하더라도 조기에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 늘고 있다. 이는 직장 내 인간관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마저 제한된다.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이제는 사전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월 용돈의 범위 내에서 모든 소비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적 자유도의 상실로 이어지며, 가정 내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가계부 전쟁… 남편과 아내 사이의 경제 갈등
흥미롭게도 이런 용돈 문제는 부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편은 현실적으로 30만 원의 용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가정 경제 전체를 봤을 때 더 이상 주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교집합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부 가정에서는 남편의 추가 용돈 요청에 대해 “그럼 너는 뭐를 줄 거야?”라는 역질문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가정 경제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더 벌어야 하고, 누군가는 더 절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부 간의 신뢰와 대화는 후순위로 밀려나간다.
2026년, ’30만 원’은 더 이상 버팀목이 될 수 없다
2026년은 한국 가정경제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용돈 기준선은 바뀌지 않는 이 악순환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현재의 물가 상승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식료품, 외식비, 교통비, 의료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상 요인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가정에서는 용돈 기준을 재협상할 시점에 와 있다. 이는 단순히 금액의 상향이 아니라, 가정 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 전환을 의미한다. 남편의 용돈도 중요하지만, 가정 전체의 재정 건강도 중요하다는 균형 잡힌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용돈뿐 아니라 가정의 전반적인 재정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국 2026년의 현실은 기혼 가정에게 중요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점심값이 1만 원대를 넘나드는 세상에서, 남편의 용돈 30만 원은 이제 ‘관습’이 아닌 ‘문제’가 되었다. 남편들의 “정말 30만 원은 생존 불가능하다”는 호소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한국 중산층 가정이 마주한 현실이자 앞으로의 과제다. 부부 간의 진솔한 대화와 함께 가정경제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