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스캔들이 뉴스를 장악한 진짜 이유, 한국 언론의 민낯

요즘 뉴스를 켜면 정말 한심할 정도로 연예인 기사로 도배되어 있다. 박나래 매니저 폭로, 조진웅 소년범 전력, 조세호 조폭 연루설, 이이경 사생활 루머까지. 불과 며칠 사이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이런 스캔들들이 국제정세, 경제 뉴스보다 더 큰 면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현실이 정말 답답하다. 그런데 정말 이런 기사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뉴스일까.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런 기사들을 계속 던져주고,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왜 이런 스캔들이 한국 언론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는지, 그 구조적인 문제를 차갑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주요 기사의 빠른 정리: 지난 일주일 연예계는 지옥이었다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연예계에서 터져 나온 스캔들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박나래는 전 매니저들의 폭로로 갑질 의혹에 휘말렸다. 매니저들은 박나래가 24시간 대기를 강요했고, 술자리 강요, 안주 심부름, 파티 뒷정리는 물론 가족 관련 일까지 시켰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의료법 위반 의혹까지 겹쳐서 결국 박나래는 방송 활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발표했다.

배우 조진웅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차량 절도, 강도, 강간 혐의로 소년원에 송치된 사실이 폭로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과거 범죄 기록이 있던 것도 충격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폭행 사건이 있었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조세호는 조직폭력배 핵심 인물과의 친분이 공개되면서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고, 추가 증거를 공개하겠다는 폭로자의 예고로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이경 역시 사생활 루머가 불거지면서 ‘놀면 뭐하니?’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고정 프로그램에서 연달아 하차했다.

이 모든 일이 단 일주일 사이에 동시에 터졌다. 언론은 이것을 보고 정신을 못 차렸다. 더 이상 뉴스판에는 연예계 스캔들 외에 다른 뉴스가 거의 없을 정도다.

언론사의 광고료와 클릭수, 뉴스룸의 변질

한국 언론이 연예인 기사에 집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스포츠 기사나 연예 기사는 클릭률이 높다. 독자들이 좋아한다. 특히 스캔들은 대박이다. 명리나 대출 정보 기사에 비해 연예인 논란은 수천 배의 조회수를 끌어온다.

언론사들의 디지털 수익 구조가 광고료 중심으로 변하면서, 편집국은 클릭을 최대화할 수 있는 기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문제다. 종전에 신문사들이 신뢰도와 보도 가치를 중심으로 뉴스 게이트키핑을 했다면, 요즘은 클릭률과 체류시간이 최우선이다.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조진웅의 과거 범죄 기사 한 건이 들어오면 이것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추가 폭로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기사를 만든다. 한 가지 스캔들로 최소 5개에서 10개의 기사를 빨아낼 수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네 명의 스캔들은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금광을 발견한 것이다. 클릭 경제 아래서 연예 뉴스는 가장 합리적인 기사 생산 수단이 되어버렸다.

이런 구조 속에서 뉴스판은 부자연스럽게 변했다. 정부 정책, 국제 분쟁, 경제 이슈 같은 ‘어려운’ 기사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기사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기사가 우선이 되었다.

독자의 욕망이 뉴스를 만든다는 거짓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변명으로 이렇게 말한다. “독자들이 원하는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당신이 포털 뉴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연예 기사다. 알고리즘도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언론사가 계속 퍼올리는 것이니까 당신도 자연스럽게 본다. 그래서 클릭수가 늘어난다. 그러면 언론사는 더 많은 연예 기사를 올린다. 더 많은 독자가 본다. 이건 악순환이다.

독자들이 정말 원했던 건가? 아니면 제시받은 것을 받아들인 건가? 실제로 이런 구조 속에서 독자의 ‘선택’이라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마치 슈퍼마켓에서 계산대 앞에 놓인 초콜릿을 사고 “이게 바로 고객이 원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것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과 유명 기업도 감사해하는 구조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 언론의 변질은 특정 집단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다. 언론이 연예인 스캔들로 바빠 있는 동안,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정치적 논란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부정적인 기사를 받기 싫은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관심이 연예인에게 가있으니 기업 비리나 노동 문제는 뒤로 밀린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둘 다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다. 언론사는 클릭률로 돈을 벌고, 권력자들은 감시를 덜 받는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중요한 뉴스보다 자극적인 기사로 정신이 분산된다.

연예인들도 피해자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연예인들도 이 구조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물론 범죄나 비리가 있다면 보도되어야 맞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연예인의 실수나 과거를 무한정 파헤치고, 입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일차원적인 캐릭터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조진웅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는 분명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보도 방식은 그저 ‘악마’로 낙인찍는 것에 가깝다. 박나래 역시 매니저 갑질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지만, 언론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한정 추측성 기사를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들은 마치 공중의 적처럼 되어 수백만 사람들의 분노와 욕설의 대상이 된다. SNS는 광장이 아니라 린치의 장소가 되어버린다. 이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보도를 넘어 과도한 낙인찍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가십 저널리즘의 일상화

사실 한국 언론이 가십에 의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요즘처럼 노골적이었던 적은 드물다. 종전에는 최소한 뉴스의 형식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포털뉴스와 유튜브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식이 벗겨졌다.

언론사들이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들을 보면 더 명확하다. ‘충격’, ‘반전’, ‘폭로’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 정상이 되어버렸다. 제목만 봐도 선정성이 드러난다.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가 된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결국 문제는 언론 구조 자체에 있고, 이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개별 독자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는 뉴스를 소비할 때 몇 가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이 기사가 정말 중요한 뉴스인가? 아니면 내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인가? 이 기사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이 보도가 정말 필요한 것이었나, 아니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과장된 것은 아닌가?

특히 분노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위험하다. 그 감정이 클릭을 유도하고, 언론사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연예인을 향한 무분별한 비판도, 동의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소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이런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해외 언론과의 비교, 한국만의 문제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연예인 스캔들 보도가 많은 것은 한국만의 현상일까? 아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국의 플릿 스트리트 언론도 연예인 기사를 많이 다룬다. 차이는 ‘정도’에 있다.

서구의 주류 언론들은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이슈를 우선순위에 두는 편집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연예인 뉴스는 ‘라이프스타일’ 섹션에 분류되거나 별도의 매거진에서 다루어진다. 반면 한국의 포털과 언론사는 정치 다음으로 연예 기사를 배치한다. 국민의 알 권리와 연예 가십을 동등하게, 심지어 연예 기사를 더 큰 면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연예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언론의 기사 선택이 문제라는 뜻이다. 포털 뉴스의 알고리즘도 이를 반영한다. 연예 기사를 자주 클릭하는 사용자에게는 더욱 많은 연예 기사를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연예 뉴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동시다발 터지는 스캔들, 우연일까 필연일까

한 가지 더 고민해볼 점은 왜 이 많은 스캔들들이 동시에 터졌느냐는 것이다. 조진웅, 박나래, 조세호, 이이경. 불과 며칠 사이에 네 명의 연예인이 동시에 논란에 휘말렸다. 이것이 순수한 우연일까?

미디어 생태계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어느 정도 필연이다. 한 명의 스캔들이 터지면 언론은 전력을 다해 그것을 팔아낸다. 그렇게 되면 다른 잠재적 폭로자들도 기사의 파급력이 클 것 같아 자신의 이야기도 꺼내기 시작한다. 혹은 유명인들의 신상 정보를 수집해온 사람들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폭로를 시작할 수도 있다. 미디어의 집중력이 예술계에 쏠린 그 순간이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스캔들의 동시다발성도 결코 무작위가 아니다. 사회 생태계의 불균형이 만든 필연적 결과다.

피해 대응, 진실과 명예의 싸움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스캔들 속에서 피해자들의 대응 방식이다. 박나래나 조세호 같은 경우 자신의 입장을 발표하고 강경 대응한다고 했지만, 이미 언론과 대중의 판단은 상당 부분 이루어진 후다. 아무리 강경하게 대응해도 한 번 터진 기사의 파장은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은 명예훼손 소송으로도 극복하기 어렵다. 법적 승리를 얻더라도 여론의 낙인은 남아있다. 조진웅이 은퇴를 선택한 것도 이런 현실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인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가 언론의 노출인데, 그것이 순간에 형벌로 바뀐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진정한 변화는 어디서부터?

언론개혁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시장 구조 자체가 이런 콘텐츠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화는 독자 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자극적인 연예 기사 대신 사실을 기반으로 한 기사를 클릭하고, 과장된 제목 대신 균형잡힌 보도를 찾아 읽고, 무분별한 댓글 문화를 거부하는 것. 이런 개별적인 선택들이 모이면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다. 광고주들은 트래픽이 가는 곳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선정적인 기사에 클릭하지 않기. 둘째, 균형잡힌 보도를 하는 언론을 후원하고 구독하기. 셋째, SNS에서 무분별한 욕설과 비난 대신 생각 있는 댓글 쓰기. 넷째, 주변 사람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 알리기.

특히 자녀들을 둔 부모라면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어릴 때부터 뉴스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지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키우는 세대가 더 나은 언론 문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는가가 곧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드는가를 결정한다. 박나래와 조진웅 논란이 부끄러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국제 분쟁과 경제 뉴스가 있다.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언론도 변할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이 꼭 필요한 뉴스와 자극적인 기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다. 국민이 올바른 정보를 받지 못하면 올바른 판단도, 올바른 선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예계 동시다발 스캔들은 우리 언론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누가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왜 이런 뉴스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언론이 왜 이를 제공하는지 차갑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언론 개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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